1982년에 태어난 여성 이름 중 김지영은 가장 흔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82년생 김지영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이 여정에서 독자는 세계와 온몸으로 부대끼는 김지영을 목격하게 된다. 세계와의 작용으로 형성된 2016년의 김지영을 마주하게 된다.
소설의 플롯은 이렇다. 김지영이 지인에게 빙의된 듯한 증세를 보이던 2015년 가을 무렵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작가는 시간을 거슬러 김지영의 탄생·성장·취업·결혼·출산·육아 과정을 들여다보고 이따금 가족사를 들춘다. 2016년 현재로 돌아와, 김지영의 주치의가 김지영을 진단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주치의는 자신의 가족사에 기대어 여느 남자와는 달리 김지영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살아오며 왕왕 성비 불균형에 대한 뉴스를 접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것의 결과만을 생각했지 원인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 '여자 아이 수에 비해 남자 아이 수가 많다는데(?) 훗날 여러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넘겨 버렸다. 되새겨보면 이상한 일이다. 행운의 여신이 남성을 편애하여 매번 한쪽 손을 들어준단 말인가? 이 소설을 읽으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의학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게 이미 10년 전이었고, '딸'이라는 게 의학적인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 1980년대 내내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 어머니는 혼자 병원에 가서 김지영 씨의 여동생을 '지웠다'. (29)
김지영의 형제 구성원은 언니 1명, 남동생 1명이다. 그러나 잉태는 되었으나 세상 빛을 보지 못한 형제가 있었다. 태어났다면 김지영에겐 여동생, 김지영의 남동생에겐 셋째 누나가 되었을 것이다. 김지영의 모친은 차마 셋째 딸을 출산할 수 없었다. 가족과 사회와 세상은 가뜩이나 무거운 산모의 몸을 비참하게 짓눌렀다. 김지영은 둘째 딸이었기에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다.
차별의 감지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한다. 다음은 어딘가에서 들은 얘기다. 아이가 여럿 모인 가운데 의자를 배분하고 그중 한 아이에게만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주었을 때 나머지 아이들은 불합리함을 직감한다고 한다. 김지영과 김지영의 언니 김은영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 본능을 시험당했다. 할머니는 남동생을 편애했다. 할머니는 김지영이 남동생 분유를 먹는 것을 싫어했다. 언제부턴가 남동생의 분유를 먹지 않는 언니에게 김지영이 물었다. "언니는 분유 맛없어?" "맛있어." "근데 왜 안 먹어?" "치사해서." "응?" "치사해서 안 먹어. 절대 안 먹어." (24)
남성 우월주의는 당연해 보이고 워낙 견고한 틀이어서 남성은 물론 여성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 김지영은 학급의 1번은 왜 남자부터 매기는지, 주민등록번호는 왜 남자가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지 등등의 사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취업 면접을 보기 위해 올라탄 택시에서 김지영은 이런 말을 들었다.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 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거야." (100) 면접장에서 중년 남자 이사가 물었다. "여러분이 거래처 미팅을 나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래처 상사가 자꾸 좀, 그런, 신체 접촉을 하는 겁니다. 괜히 어깨도 주물주물하고, 허벅지도 슬쩍슬쩍 만지고, 엉? 그런 거? 알죠?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김지영 씨부터." (101) 김지영을 비롯한 세 명의 여자는 면접에서 탈락했다.
김지영은 칠전팔기 끝에 취업에 성공한다. 그러나 열정을 다하는 여 사원들을 회사는 정식 구성원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대표는 업무 강도와 특성상 일과 결혼 생활, 특히 육아를 병행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여직원들을 오래갈 동료로 여기지 않는다. (123) 김지영은 입사부터 지금까지 남자 동기들의 연봉이 쭉 더 높다는 것 (124) 을 뒤늦게 알게 된다.
2008년 1월 1일부로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경우는 호주제가 폐지된 2008년 65건을 시작으로 매년 200건 안팎에 불과하다. (132) 김지영과 김지영의 남편 정대현은 혼인신고를 앞두고 이 문제와 맞닥뜨렸다. 김지영은 이렇게 말했고, 정대현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속내를 비췄다. "아직은 아빠 성을 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 엄마 성을 따랐다고 하면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설명하고 정정하고 확인해야 할 일들도 많이 생기겠지." (132)
정대현은 꽤 괜찮은 남편이다. 김지영의 말을 차분하게 들을 줄 알고, 자기 잘못을 성찰하고 사과할 줄 안다. 시댁 어른들이 김지영·정대현 부부의 임신을 화제에 올렸을 때, 정대현은 아기를 가지면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고 잔소리 회피 방법을 제시한다. 꽤 괜찮은 남편 정대현은 말한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먹이고, 내복도 삶고 그럴게." (136) 꽤 괜찮은 남편 정대현도 육아의 조력자가 될지언정 주체가 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며 불편해하는 남자들이 있을 것이다. 여권은 계속해 신장하고, 이젠 역차별마저 존재하며, 정대현쯤 되면 엄청 좋은 남편 아니냐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지금은 김지영의 엄마처럼 남자 형제를 공부시키기 위해 본인이 희생하는 세상은 아니다. 더 이상 부모들은 여자라서 덜 배워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행해지는 차별은 모두 사라진 걸까?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김지영은 중학생 시절 학원 수업을 마친 뒤 귀갓길에서 같은 학원 남학생의 위협을 받는다. 다행히 버스에 동승했던 여자의 도움으로 험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후에 김지영은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도움을 준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소설엔 통화 내용이 이렇게 서술돼 있다.
여자는 다행이라며 대뜸 학생 잘못이 아니에요, 했다.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가 너무 많고, 자신도 많이 겪었다고, 이상한 그들이 문제지 학생은 잘못한 게 없다는 여자의 말을 듣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꺽꺽 울음을 삼키느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김지영 씨에게 전화기 너머의 여자가 덧붙였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68~69)
이 소설을 읽고 불편함만을 느끼지 않은 남자라면, 때론 억울하고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 기저에 여자에 대한 미안함이 자리하는 남자라면, 당신은 좋은 남자가 될 자격을 갖췄다. 세상이 남자의 결점을 지적할 때 당신은 남자라는 기호에 동화되어 분노하지 않아도 된다. 남자라는 기호로부터 성큼 걸어 나와 약자의 편에 서고, 불공평과 부당함에 함께 맞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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