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전이란
고전이란 무엇일까? 고전이라고 하면, 클래식 음악이나 출판사에서 선정한 세계 문학 전집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것만으로 고전을 정의하기엔 어쩐지 부족해 보인다. 지체 없이 국어사전을 뒤져보자.
고전古典, 명사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1. 옛날의 의식(儀式)이나 법식(法式).
2.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3. 2세기 이래의 그리스와 로마의 대표적 저술.
4. 옛날의 서적이나 작품.
그렇지만 국어사전에서 정의 내린 고전의 개념에서도 나는 부족함을 느껴왔다. 그러던 와중에 슬라보예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에서 고전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와 닿는 문장을 만났다.
정말로 위대한 작품을 가려내는 방법은 탈맥락화de-contextualization, 즉 새로운 맥락으로 옮겨졌을 때 얼마나 잘 살아남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멈춰라, 생각하라』 (주성우 옮김, 와이즈베리, 2012), 슬라보예 지젝
지젝의 말에 『1984』를 적용해보자. 스미스와 줄리아의 사랑, 스미스가 오브라이언에게 느끼는 동질감, 예정된 최후, 등등의 맥락을 제거하자. 세부 맥락을 없앤 뒤에 남는 『1984』의 주제의식은 무엇인가? 전체주의·통제·감시·획일화 따위에 대한 경고이리라. 이렇게 『1984』라는 작품을 탈맥락화한 후에 잔재하는 주제의식을 현재로 가져오자. 과연 유효한가? 나는 『1984』가 2014년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4. 현존하는 빅 브라더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은 1984년 1월 1일 정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전 세계를 인공위성으로 생중계하며 상호소통적인 예술매체로 활용하는 '참여 TV'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파리의 퐁피두 센터, 뉴욕의 WNET 텔레비전 스튜디오를 연결하여 중계하고 한국, 일본, 독일 등에서 이를 수신하였다.(네이버캐스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인용) 이 쇼의 이름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에 지배당하며 살 것이라는 내용은 틀렸다는 뜻을 담았다.(위키 백과 인용) 요컨대 1984년 정오를 기해 백남준은 "오웰, 당신은 틀렸어!"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로부터 30년 남짓 시간이 흐른 2014년, 나는 백남준 선생에게 자신의 선언을 되돌려 준다.
"백남준 선생님, 선생님이 틀렸습니다!"
2014년 국가기관의 카카오톡 검열이라는 사건이 불거졌다. 공권력 남용이라는 의견과 적법한 법 집행이라는 주장이 맞서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압수수색 영장이 아닌, 감청 영장(기사<news1> 참고)임에도 이용자의 대화내용을 (고민 없이) 국가기관에 넘겼다는 점에서 다음카카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이를 프라이버시 침해로 받아들인 이용자들 사이에서 독일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이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즉 사이버 망명이란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다음카카오는 외양간 프로젝트라는 이름하에, 감청 영장을 거부하고 메시지 저장 기간을 축소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는다.
물론 국가에 예속된 사기업에게만 회초리를 들 수는 없다. 무리하게 이용자 정보를 요청한 검찰과 경찰, 그리고 신청된 영장을 별다른 고민 없이 (대부분) 발부한 법원의 책임이 훨씬 더 막중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백남준은 오웰의 경고를 너무 안이하게 바라본 것 아닐까? 시스템의 정보화는 많은 순기능을 파생하지만, 빅 브라더로 상징되는 텔레스크린의 기능적 강화를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개인 정보 침해 사례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CIA와 NSA에서 근무했던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은 2013년 가디언지를 통해 미국내 통화감찰 기록과 PRISM 감시 프로그램 등 NSA의 다양한 기밀문서를 공개했다.(위키백과 인용) PRISM은 9.11. 테러의 반대급부로 등장한 프로젝트이다. 위키백과의 PRISM에 대한 설명은 이러하다. 2007년 9월 11일,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서명한 2007년 미국 보안법에 의거해 NSA의 대규모 국내외 감시 체계가 출범했다. NSA의 관할 하에 있었던 5년 이후, 2013년 6월 6일 전직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대량 정보 수집의 범위가 일반 대중에게까지 미치고 있다"며 "'위험한' 활동과 '범죄적인' 활동까지 감시되고 있다."고 프리즘의 감시 범위가 광범위함을 폭로했다.(위키백과 인용)
테러 등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시작된 정보 수집의 대상이 민간인에게뿐 아니라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타국의 정상에게까지 미쳤다니 실로 광범위하다고 하겠다. 스노든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망명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행정부를 비롯한 국가 기관은 국익에 심대한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또한 스노든은 2014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었다고 하니 미국 행정부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내가 사는 2014년의 오늘은 인간 역사상 가장 진보한 형태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외국을 막론하고 오웰이 경고한 빅 브라더의 시선은 건재하다. 본래 국가라는 체제는 (아무리 진보하여도) 스스로 인간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1984』의 메시지는 아직 유효하다. 우리에겐, 국가나 권력기관의 메시지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다수의 대중보다는 한 명의 윈스턴 스미스가 필요한 것 아닐까? 데카르트는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려 말한다.
"나는 (미심쩍은 것을)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2017/09/15 - [독후감/800 문학] - 조지 오웰과 『1984』 (1)
2017/09/15 - [독후감/800 문학] - 조지 오웰과 『198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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