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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讀後感

방탄소년단(BTS) 현상은 세계 변혁의 징후인가

by perspector 2018. 8. 24.

글쓴이에게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던 방탄소년단이란 이름은 설핏하게나마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동력이 되었다. 제법 인기를 끄는 그룹임은 알았지만 BTS의 저력을 새삼 확인한 것은 그들이 빌보드 순위에 이름을 얹은 즈음부터다. 그들 성취의 대단함에 놀라워했으나 정작 BTS에 관심을 둔 계기는 따로 있다. 이에 관해서는 글 후미에 적겠다. BTS 관련한 간략한 정보와 그들의 성취 사항을 나열하고 궁극적으론 이른바 '방탄현상'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미리 밝히는바 이 글의 숙주는 이지영이 쓴 『BTS 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파레시아, 2018)과 각종 언론 보도이다.


<출처 :  Big Hit Entertainment>




멤버


(김석진, 1992, 서브보컬) ‧ 슈가(민윤기, 1993, 리드래퍼) ‧ 제이홉(정호석, 1994, 서브래퍼‧메인댄서) ‧ RM(김남준, 1994, 리더‧메인래퍼) ‧ 지민(박지민, 1995, 리드보컬‧메인댄서) ‧ (김태형, 1995, 서브보컬) ‧ 정국(전정국, 1997, 메인보컬‧서브래퍼‧리드댄서) 7명의 멤버로 구성된 방탄소년단은 2013년 6월 13일에 데뷔하였다. 'Bullet Proof'(총알 보호장치, 방탄) 즉 10~20대 청춘이 겪는 고통, 억압, 편견 등등을 막아 주겠다는 뜻에서 방탄소년단(이하 방탄으로 표기)이라는 팀명이 탄생했다.


주지하다시피 방탄 구성원을 선발하고 조직한 사람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이사(이자 프로듀서)이다.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4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박진영의 눈에 띄어 프로듀서로서 첫걸음을 뗐으며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에이트(8Eight)의 <심장이 없어>, 임정희의 <시계 태엽> 등 다수의 히트곡을 만들었다.


방 PD가 의도하진 않았다지만 멤버들 면면을 보면 모두 국내파에 비非서울 출신이다. 게다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SM‧YG‧JYP와 같은 대형 기획사가 아니다. 이러한 배경은 방탄의 순탄하지 않은 시작의 연유가 되었을 것이다(활동 초기에 붙은 흙수저 아이돌이란 별칭을 떠올려 보라). 일장일단이라던가. 기술적 심산(미디어 소외의 대안)이었건 아티스트에 대한 배려였건, 방PD는 방탄 멤버들의 SNS(트위터, 유튜브 등등) 활동을 막지 않았다. SNS를 활용하는 연예인은 흔하다. 방탄이 달랐던 점은 활동기, 비활동기를 가리지 않고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생활상과 더불어 그때그때의 감정을 공유해 온 것이다. 소속사의 전폭적 지원을 받지 못한 결과인지 구성원들의 음악적 열정 때문인지 몰라도 방탄의 전 멤버는 작사‧작곡 등 프로듀싱 능력을 갖췄다.


방탄의 성공 이유는 다양하게 분석되고 있지만 방탄을 직접 키워낸 이의 말(언론사와의 인터뷰)에 주목해 보는 것도 유의미하겠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K-POP의 원칙을 지키는 것' '팬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 '마케팅보다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

소셜미디어의 힘에 더해서 기본적으로 K팝 특유의 트렌디함과 퍼포먼스가 있었다. 거기에 서구권 아티스트들처럼 음악에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냈다는 점 같다. 공감과 소통이 성공 비결 아닐까. <출처 : 월간조선>




앨범


2 COOL 4 SKOOL (싱글, 2013.06.12.)

O!RUL8,2? (미니1, 2013.09.11.)

SKOOL LUV AFFAIR (미니2, 2014.02.12.)

SKOOL LUV AFFAIR SPECIAL ADDITION (리패키지, 2014.05.14.)

DARK&WILD (정규1, 2014.08.20.)

화양연화 pt.1 (미니3, 2015.04.29.)

화양연화 pt.2 (미니4, 2015.11.30.)

화양연화 Young Forever (리패키지, 2016.05.02.)

WINGS (정규2, 2016.10.10.)

YOU NEVER WALK ALONE (리패키지, 2017.02.13.)

LOVE YOURSELF 承 'Her' (미니5, 2017.09.18.)

LOVE YOURSELF 轉 'Tear' (정규3, 2018.05.18.)

⑬ LOVE YOURSELF 結 'Answer' (리패키지, 2018.08.24.)


(physical 앨범만 줄 세웠다.)


BTS - NO More Dream (싱글 《2 COOL 4 SKOOL》 수록)


방탄의 음악엔 스토리텔링이 있다. 연속물, 학교 3부작(①~③[④])에서는 글자 그대로 '학생의 삶'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화양연화 pt.1~2는 청춘 2부작으로 불린다(화양연화 시리즈로 '빌보드 200' 차트에 처음 진입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규 2집 《WINGS》에서는 "꿈과 사랑을 두고 고민하는 청춘의 고뇌를 사실적으로 노래했다.(뷰어스)" <'Not Today'>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 일부 인용돼 있으며 <봄날>에는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은유가 등장한다. 보통 아이돌이 흔히 다루는 주제와는 상이한 음악을 하다보니 가사에서부터 이질성이 드러난다.


◆방탄소년단, 빅뱅, 트와이스 노랫말 분석 <출처 : 한국일보>


[방탄소년단]

사용 단어(반복 횟수)

-노력(38), 인생(17) 청춘의 화두

-부조리 비판 노(NO), 롱(Wrong) 등 넘치는 부정어(166)

*최다 반복 '나'(1,000)


주요 가사

-"맨날 몇 포 세대, 노력 노력 타령 좀 그만둬" ('뱁세')

-"똑같은 꼭두각시 인생" ('N.O.')

-"우린 다 개돼지" ('엠 아이 롱')

"장래 희망 넘버원, 공무원?" ('노 모어 드림')


[빅뱅]

-사랑(235), 재미(35), 행복(29)

*최다 반복 '베이비'(Baby ‧ 450)


[트와이스]

-스위트(Sweet ‧ 12), 치어(Cheer ‧ 11)

*최다 반복 '베이비'(144)


사랑, 베이비를 남발한다고 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사회성 짙은 가사를 담는다고 절로 좋은 노래가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방탄이 사회(문제)와 접촉하는 음악을 한다는 것, 메시지의 파급을 배가하기 위해 적절히 은유를 사용한다는 것, 그들의 작품 하나하나는 따로 떼 낼 수 없는 동기간이라는 것, 끊임없이 구상하고 배치하는 음악을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가령 LOVE YOURSELF 起承轉結기승전결 시리즈는 '승'부터 발매되었고 이 역시 의도가 깔렸다). 다음은 방탄의 리더 RM의 말이다.


"방탄소년단을 포함한 우리가 사회 문제 및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고 부수어 나가고 문제제기를 하자는 의미로 가사를 썼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공모하고, 책을 읽고 전문가도 만나며 함께 고민하고 있다. 부족하지만 지적과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고민하고 성장하겠다." <출처 : 뷰어스>




기록 및 성과


BTS - DNA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s] 2017)


DNA : 약 4억 5천뷰 _LOVE YOURSELF 承 'Her'

불타오르네 (FIRE) : 약 3억 9천뷰 _화양연화 Young Forever

쩔어 : 약 3억 4천뷰 _화양연화 pt.1

피 땀 눈물 : 약 3억 3천뷰 _WINGS

Not Today : 약 2억 4천뷰 _YOU NEVER WALK ALONE

Save ME : 약 2억6천뷰 _화양연화 Young Forever

MIC Drop (Steve Aoki Remix) (Feat. Desiigner) : 약 3억뷰 _MIC Drop (Steve Aoki Remix) (Feat. Desiigner)

상남자 : 약 2억 3천뷰 _Skool Luv Affair

FAKE LOVE : 약 2억 6천뷰 _LOVE YOURSELF 轉 'Tear'

봄날 : 약 1억 8천뷰 _YOU NEVER WALK ALONE

Danger : 약 1억 1천뷰 _DARK&WILD

I NEED U : 약 1억 4천뷰 _화양연화 pt.1

호르몬 전쟁 : 약 1억 4천뷰 _DARK&WILD


(글쓰는 시점에서) 방탄의 뮤직비디오 가운데 유튜브 1억뷰를 넘긴 영상은 13개이다. 빌보드 '소셜 50' 차트 1위를 다수 차지했고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연이어(2017~2018) 받았다(2017년에는 저스틴 비버를 제쳤다). <'DNA'>로 빌보드 '핫 100' 차트 67위, <'MIC Drop (Steve Aoki Remix) (Feat. Desiigner)'>로 동일 차트 28위, <'FAKE LOVE'>로 동일 차트 10위에 올랐다.


《LOVE YOURSELF 承 'Her'》(미니5)로 메인차트인 '빌보드 200' 차트 7위를 기록했다. 정규 3집 《LOVE YOURSELF 轉 'Tear'》로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달성했다(2018). 2006년 다국적 팝페라 그룹 일 디보 이후로 외국어(비영어)로 된 앨범이 '빌보드 200'에서 1위를 한 것은 처음이며 아시아 가수로도 최초의 기록이다.


'빌보드 200'은 인기 앨범 순위, '핫 100'은 인기곡 순위를 말하는 거다. 앨범이 인기가 있다는 것은 충성된 팬덤이 있다는 의미이고, 노래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즉, 여러 곡이 담겨 있는 앨범은 팬들이 많이 사지만 그저 음악을 즐기는 대중들은 굳이 그 앨범을 사지는 않는다. 대신 좋은 노래가 있다고 하면 음원을 다운로드 받거나 스트리밍해서 듣는다. 그래서 흔히 '어떤 가수의 특정한 곡이 차트 1등을 했다'고 말할 땐 '핫 100'에서 1등을 했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강남스타일'은 '핫 100' 2위에서 7주간이나 머물렀다. <출처 : 주간경향>


국내 기록도 보자.


《WINGS》 : "선주문량만 50만장을 기록하며 단 두 달간 75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뷰어스)"


《LOVE YOURSELF 承 'Her'》 : "선주문량만 105만장이었고 1년치 판매량은 150만장에 육박했다. 단일 앨범 기준 밀리언셀러는 지난 2001년 그룹 god의 정규 4집 이후 16년 만의 기록이다.(중앙일보)"


《LOVE YOURSELF 轉 'Tear'》 : 선주문량만 150만장으로 역대 최대 주문량을 기록했다. "출시 이후 14일 만에 166만 4041장의 판매를 기록해 단일 앨범 월간 판매 기준 2000년 9월 조성모 3집(170만 5127장, 한국음반산업협회) 이후 약 17년 만에 166만장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뷰어스)"


BTS - FAKE LOVE (빌보드 뮤직 어워드[BBMA] 2018)




팬클럽


방탄의 공식 팬클럽 이름은 A.R.M.Y(이하 아미로 표기)이다. 두 가지를 함의하는데 첫째는 방탄복과 군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방탄과 아미 역시 마냥 함께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두 번째는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의 줄임말이고 해석하자면 '청춘의 사랑스러운 대변자'쯤 될 것이다.


어느 언론은 팬들이 방탄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를 '떡밥' 때문이라고 썼다. 다시 말해 뜯어먹을 게 많다는 말이다. 전술했듯 방탄은 수시로 SNS에 글을 쓰고 영상을 올리며 팬들과 소통한다. 소위 입덕한 지 꽤 오래된 팬조차 그들이 생산한 모든 영상을 섭렵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는 까닭이다. 떡밥이란 일상적 소통 자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뮤직비디오를 위시하여 방탄의 음악 관련 영상은 해석의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아미는 지질학자를 자처함으로써 생산자가 엄폐한 상징을 파헤치고 한술 더 떠 2차 생산물을 내놓는다. 먼저 소개한 책의 저자 이지영은 아미가 만들어내는 영상을 "리액션 비디오, 분석theory 비디오, 커버 댄스cover dance 비디오, 방탄 앨범 혹은 굿즈 상품 개봉기unboxing 비디오, 노래 가사 비디오, 방탄 영상의 재편집remix 비디오(71)" 등으로 분류한다.


리액션 비디오는 방탄이 생산한 뮤직비디오나 트레일러, 공연 영상 등을 보며 놀라거나 환호하는 자신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리액션 비디오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감정적 동조 경향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

분석 비디오 역시 여러 수준에서 다양하게 생산된다. 전문가 수준의 분석을 보여주는 영상이 있는가 하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뮤직비디오에서 보통 사람들이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디테일들을 알려주는 비디오도 있다. (‧‧‧)

커버 댄스와 플래쉬 몹 등을 영상으로 찍어 온라인에 올리는 '영업' 방식도 있다. 유튜브에는 파리, 런던, 뉴욕,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호치민 등 세계 유명 도시의 도심 광장에서 방탄의 커버 댄스를 군중 앞에서 선보이는 영상들이 넘쳐난다.


『BTS 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이지영, 파레시아, 2018, 71~73, 75)


음악과 영상에 함유된 상징적 기호와 스토리텔링, 외모, 무난한 노래 실력, 칼군무, 진정이 전해지는 소통 능력 등 방탄이 국내 시장을 넘어 북미 시장에서까지 통한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아미를 빼놓고 방탄의 고무적 성과를 논하기는 불가능하다. 방탄이 생산하는 본류 자료(음악)든 지류 자료(소통)든 그것이 웹상에 전시되는 순간 아미의 번역 작업은 시작된다. 국내 아미의 중계자적 노고가 없었다면 방탄에 대한 해외 아미의 접근성은 현저히 떨어졌을 게 자명하다. 국내 아미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은 해외(미국) 아미는 지역 라디오 방송을 채근하여 방탄의 노래를 선곡하게 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방탄 음악을 판매하게끔 힘썼다. 2차 생산물을 만들어 전파했다. 방탄의 친구이자 응원자로서 국내 아미와 해외 아미는 친화하며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일련의 움직임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 그들(방탄, 아미)은 '빌보드 200' 차트 1위라는 결실을 거두지 않았을까.


◆내가 '아미'가 된 이유 <출처 : 한국일보>


국적, 이름(나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이유


미국, 미아 자바라(20), "음악이 멋있다. 다른 K팝과 달리 신선하고 독특하다. 멤버들의 자작곡 창작 능력이 특별했다."


일본, 스즈키 도코(20), "춤과 노래 실력이 출중하고 앨범에 스토리가 이어져 매력적이다. '피땀 눈물'은 소설 '데미안'을 모티프로 해서 어려웠는데, 점점 아름답게 보였다."


중국, 리워은신(24), "멤버들 다 잘생겼고 공감 가는 노래를 해 좋다. 노래가 실속 있다. 노래에서 주장하는 걸 현실로 만들어 멋지다."


프랑스, 데보라 달보에(20), "엑소를 좋아하다 방탄소년단을 알게 돼 팬이 됐다. 음악이 좋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5년째 K팝을 듣고 있다."


독일, 리니(23), "힙합 음악과 가사에 끌렸다.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얘기해 음악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리좀과 방탄현상


원래 리좀rhizome은 생강이나 연근처럼 마디에서 뿌리와 어린 줄기가 뻗어 나오는 뿌리줄기 혹은 뿌리줄기 식물을 가리키는 식물학 용어이다. 뿌리줄기는 땅속에서 부단히 증식을 하면서 다른 뿌리와 연결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수평적으로 뻗어 나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천개의 고원』에서 이 식물학 개념을 사회 구조, 철학사, 정치 체제, 과학 방법론, 예술 작품의 구성 등 거의 모든 영역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리좀을 단일한 중심이 없는 수평적 연결이라고 규정하면서 나무의 위계적이고 중심적 구조와 대립하는 것으로 놓는다. (86~87)


드디어 방탄현상이다. 저자는 방탄현상을 설명할 요량으로 들뢰즈에게서 리좀이란 개념을 차용한다. 용이한 이해를 위해 리좀적 체계와 대비되는 수목적 체계에 관해서도 함께 보자. 예컨대 직장 생활을 생각해보라. 보통 직장은 물론이거니와 민주성을 지향하는 곳일지라도 그 토대엔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이 자리할 터. 수목적 체계에서는 주변과 비주류가, 중심과 주류에 예속된다. 반면 리좀적 체계에서는 중심과 주변이 구별되지 않는다. "계통상 서로 다른 것들이 단일 중심의 통제나 중심과 주변의 구분 없이 복잡하게 뒤얽(89)"힌 상태라는 것이다. 리좀적 체계는 언제든 수목적 체계에 잡아먹힐 수 있고 역으로 수목적 체계의 리좀적 체계로의 변모도 가능한 이야기다.


(88)


'방탄현상'은 비중심화된 리좀적 체계를 보여준다. 이 체계에는 거대 자본이나 이와 연계되어 있는 미디어 권력 같은 단일한 권력적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미와 방탄은 어느 하나가 중심이 아니라 서로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수평적 관계를 맺고 있다. 아미 역시 방탄 팬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는 아무런 이해관계나 유사성도 없는 무수히 다른 뿌리줄기들의 연결접속이다. (91)


들뢰즈는 리좀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구분해놓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서술하며 그것을 방탄현상에 접합한다. 그 특징이란 ①연결접속의 원리 ②이질성의 원리 ③다양체의 원리 ④탈기표작용적 단절의 원리 ⑤지도제작의 원리이다.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직접 책을 펼쳐 보길 권한다.




시간-이미지에서 네트워크-이미지로


이지영은 [들뢰즈 운동-이미지 개념에 대한 연구]로 서울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옥스포드대학교에서 영화미학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이러한 이력은 저자가 왜 들뢰즈의 개념을 계승‧발전시켜 방탄현상을 분석하는지, 예술 개념 가운데서도 유독 영상에 집중하는지를 알려준다. 들뢰즈는 저서 『시네마 1: 운동-이미지』 『시네마 2 :시간-이미지』로써 자신의 영화철학을 설파했다. (이지영의 말을 빌려 그리고 압축의 오류를 감안하고) 거칠게 요약하자면 운동-이미지는 선형적 서사를 지닌 고전영화를, 시간-이미지는 예술영화로 지칭되는 비선형적 구조의 현대영화를 가리킨다. 들뢰즈는 시간-이미지 이후 도래할 영상 예술 개념으로 전자기적 이미지를 들었다. 이지영은 들뢰즈가 전개하지 못한 전자기적 이미지 개념을 스스로 넘겨받아 네트워크-이미지라는 영상 예술 개념을 제시한다.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예술은 "처음에는 마술적 의식, 다음으로는 종교적 의식에 봉사하기 위해 생겨났다.(154)" 예술의 목적‧기능이 변화해 온 이면에는 기술의 발달이 위치하고 있다. 오늘날 (스마트폰의 출현 등) IT의 괄목상대적 발전은 새로운 예술 형식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 네트워크-이미지와 견련되는 단어를 열거해 본다. Web 2.0, 참여와 공유, 생산자‧소비자 경계의 모호성, 생산자(혹은 기존 체제)의 특권 약화 등등.


네트워크-이미지는 세계의 변화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성의 징후적 표현이다.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의 방탄현상이 보여주고 있듯이 세계는 기존의 위계와 경계를 가로질러 수평적이고 탈중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이러한 리좀적 변화가 예술에서 네트워크-이미지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해 네트워크-이미지는 그동안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대한 벽처럼 보였던 기존의 세계와 현실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지진계다. (172)




방탄 영상의 특징


저자가 지목한 방탄 영상의 특징을 보자.


① 유사한 이미지의 반복과 변형

"경찰 및 공권력의 억압적 이미지, 불타오르는 이미지, 군중의 이미지(127)"가 대표적이다. 실례를 보자. <'No More Dream'>의 "헬리콥터 아래 부분에 선명하게 보이는 글자 'POLICE'(128)", <N.O>의 "방패와 몽둥이를 든 전투경찰(128)", <'RUN'>의 "그라비티를 그리던 RM과 뷔를 체포하는 경찰들(128)", <'Not Today'>에 등장하는 검은 후드의 군중, <'MIC Drop'>의 시위대. <'No More Dream'>에 나오는 공터의 불길을 포함하여 <'Danger'> <'I NEED U'> <불타오르네> <'Not Today'> <'MIC Drop'>에도 불타거나 폭발하는 장면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방탄의 영상에서는 유사한 이미지가 변형되며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각 이미지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 영상들에서 그 이미지가 사용된 맥락과 비교해야 한다. (130)


BTS - 피 땀 눈물 (정규 2집 《WINGS》 수록)


② 이미지의 상징성

정규 2집 《WINGS》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모티브로 삼았다. 저자는 "『데미안』의 새와 알, 파괴 등은 <피 땀 눈물>에서 다양한 시각적 상징으로 변형되어(132)" 등장하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브뤼헬의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반역 천사의 추락」 등 여러 미술 작품 역시 『데미안』에 나오는 문학적 상징의 시각적 변형으로 볼 수 있다(132~133)"고 쓰고 있다. 마찬가지로 <봄날>의 뮤직비디오에는 "'오멜라스'Omelas라는 어슐러 르 귄의 소설에 나오는 상상의 도시 이름, 낡은 놀이기구에 매달린 노란 리본들, 영화 설국 열차의 기차(131)" 등 다수의 상징적 기호가 배치돼 있다는 것이다. 이미 썼듯 아미 각자는 이러한 상징들을 (때로 아티스트가 의도하지 않은 것까지 망라하여) 제가끔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공유한다.


멤버 뷔는 "'봄날'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이 모여 걸아가는 장면에 내가 촬영 중 깜빡 잊고 참여를 안 했더니 이 장면을 놓고도 팬들의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출처 : 스포츠경향>


③ 온라인 설치영상

방탄 영상의 주축은 뮤직비디오이지만 쇼트 필름short film, 하이라이트 릴highlight reel, 트레일러trailer 등 뮤직비디오와 협력하는 영상도 있다. 저자는 이들을 '온라인 설치영상'이라고 부른다.


방탄은 앨범 《WINGS》의 트레일러, 일곱 편의 쇼트 필름,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에 대한 티저 영상을 공개하고 난 뒤에야 뮤직비디오 본편을 공개했다. <피 땀 눈물>의 티저 영상은 본편에 등장할 이미지들이 영화 예고편처럼 편집되어 있는 짧은 영상으로 일반적인 티저 영상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WINGS》의 트레일러와 쇼트 필름들은 본편 뮤직비디오와는 확연히 다른 내용과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

각 쇼트 필름이 제시하는 감각의 파편들이 서로 마주치고 <피 땀 눈물>의 뮤직비디오와 어우러지면서 《WINGS》의 전체 주제가 '따로 또 같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듯 각 쇼트 필름들은 그 자체로만 의미를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영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다 풍성하고 적실성 있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상호 참조적 관련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134~135, 137)


④ 상호참조성과 관객의 참여

①~③의 교집합은 상호참조성이다. 방탄의 음악을 온전히 음미하려면 그들이 수놓은 이야기를 잇고 엮어 총제적으로 읽어 내야 한다. 하나의 작품만을 소화해서는 방탄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낱낱의 작품은 은연중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와 같은 내밀한 상징성은 지도의 완성자를 꿈꾸는 수많은 관객을 끌어모은다.


개별적인 상징 이미지와 시기별 작품 세계들이 모두 이후에 발표되는 작품들과의 상호참조 속에서 그 의미가 변형되고 확장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열린 전체로서 예술 세계도 변형, 확장되어 간다. 방탄의 세계가 형성되는 데에는 무엇보다 상호참조를 현실적으로 실행하는 관객의 참여가 중요하다. 방탄의 영상들은 관객의 참여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몇몇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시간적 간격을 두고 작품을 공개함으로써 관객의 참여를 구조적으로 강력하게 유도한다는 점이다. (138~139)




마치며


신용 유지를 위해 글 서두에 언급한, 글쓴이가 방탄에 관심을 가지고 책과 언론 기사를 읽고 나름대로 정리까지 하게 된 계기를 밝히며 글을 맺겠다. 글쓴이는 한국일보 장정일 칼럼 '프랑스 현대철학 써먹기' '증류된 순수성의 이면'을 읽은 후 방탄 그리고 이지영이 말하는 방탄현상에 대해 들여다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계의 리좀적 변혁을 예고하는 네트워크-이미지의 표출, 그에 부합하는 방탄현상이란 성실한 사례. 이것이 이지영이 말하려는 바의 요체다. 장정일은, 들뢰즈를 "방탄소년단을 치장해주는 '뽀샵 기계'"로 써먹은 이지영은 "비틀스가 소비에트 체제와 냉전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신화를 믿는다"며 예술은 세계 변혁의 주역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미국의 유명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행자의 "여자 친구는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방탄은 "여자 친구는 필요 없다. 우리에겐 팬들이 있다"고 대답하지만, 만일 기획사와의 계약서에 "연애 금지 조항이 있다면, 혁명은 먼저 제 발 밑에서부터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변호하자면 이지영도 방탄현상이 현재 벌어지는 세계 변혁의 주체라고는 쓰지 않았다. 징후라는 표현을 썼다.)


장정일의 문제적(?) 칼럼이 세상에 나온 뒤 몇몇 언론에는 그것을 반박하는 글이 실렸다. 그러나 장정일을 논박하는 글은 하나같이 논점을 이탈했다. 그들은 순문학 종사자인 장정일이 대중음악을 폄훼한다고 열을 올렸지만, 정작 장정일이 문제 삼은 건 "문화를 최종심급으로 삼아온 온갖 '신화'다." 문화는 대중음악만을 품고 있지 않다. 문학 역시 문화의 하위 범주 아닌가. 그러니까 장정일을 호되게 깔 생각이었다면 '문화는 세계를 변혁시켜 왔다'는 이 그럴듯한 명제를 논증했어야 한다. 장정일은 세계 변화를 추동하는 요인을 먹고사니즘, 곧 경제(부) 성장과 그로 말미암은 인권 의식의 개선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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